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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선생 | 2009/02/19 15:38

故 박경리 선생을 추모하며

생전 선생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시 한편을 읽어 봅니다.
옛날의 그 집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by 토선생 | 2008/05/06 10:00 | 기본테마 | 트랙백 | 덧글(0)

기적

어느 저녁 어스름 작은 소녀가 부랴부랴 허둥거리며 약국 문을 밀고 들어섰다.
마침 남자 손님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약사가 눈을 크게 뜨며 소녀를 바라 보았다.
"어디 아프니?"
앳된 소녀는 볼을 빨갛게 물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아니고요. 동생이 아파요."
"어디가 아픈데?"
"엄마가 그러시는데요...동생은 머리 속에서 나쁜 것이 자라고 있어서 매일 아프대요."
"근데, 여긴 어떻게 왔니?"
"엄마가요...동생을 낫게 하는 건 기적 뿐이래요. 그래서 기적을 사러 왔어요. 돈도 모았어요."
소녀의 이야기를 들은 약사는 황당한 표정으로 앞에 서 있는 손님을 쳐다 봤어요. 그리고 나서는 소녀에게
"얘야, 기적이라면 여기선 팔지 않는데...내가 도울 수 없겠구나."
그 때 잠자코 있던 남자 손님이 소녀에게 돌아 섰다.
"얘야, 그래 얼마나 모았니?"
소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저기...1달러 11센트에요."
그러자 그 손님은
"어이쿠, 잘했구나. 네가 모은 돈이면 기적을 사기엔 딱 맞는 금액이구나."
그 손님은 마침 뇌수술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K 박사였다. 퇴근 길에 우연히 들른 약국에서 그는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작은 천사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 소녀의 동생아이는 박사의 집도 아래 성공적으로 뇌종양 수술을 마치고 회복했다. 박사는 소녀에게서 단돈 1달러 11센트만을 수술비로 받았을 뿐이다.

by 토선생 | 2007/10/26 09:02 | Daily Jesus | 트랙백 | 덧글(0)

피드백 이야기를 읽고

『피드백 이야기』를 읽고
누구에게나 ‘피드백 통’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서 피드백을 받으면 통 안으로 들어가는데 문제는 그 통이 온전치 않다는 것이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통을 그려 보면 이해가 쉽다.
좋은 의미의 긍정적 피드백이든 나쁜 의미의 부정적 피드백이든 저마다이 피드백 통에 담겨 있어야 할텐데 숭숭 뚫려 있는 구멍들을 통해서 쉬이 빠져나가 버리고 만다. 구멍이 많을 수록 남보다 다 빨리 말라버리고 말 것은 자명한 이치다.
구멍은 왜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이 책에서 제시된 몇 가지 구멍의 원인들이 의미심장하다. 피드백 통에 생긴 구멍들의 원인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부모, 가족, 친구, 직장상사 그리고 직장 동료.
태어나면서 만남이 이루어지는 대상은 다름아닌 부모와 가족이다. 가장 가까운 관계이어야 할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내 자신의 피그백 통에 구멍이 생겨난다는 것--어찌 보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말은 전적으로 옳은 거 같다. 어린 시절의 자그만 마음의 상처도 평생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서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다.
집 밖에서 매우 바쁜 일과를 살아야 하는 부모를 둔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사회 활동으로 저명한 인사였다. 그러나 정작 아이는 부모의 손길이 몹시도 그리웠다. 어려서도 그랬지만, 학교에 들어가면서 정작 방과 후에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이 썰렁한 집. 그 아이를 반겨 준 건 냉장고 속에 포장된 밥과 반찬들 뿐이었다고 한다. 자라면서 따뜻한 밥 한번 먹어보질 못했다고 고백하는 걸 들었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 증거라고 보여준 것이 그 아이의 치아 상태였다. 고른 이 배열이 아니라 비뚤빼뚤 엉클어진 배열과 심하게 썩어서 여기저기 때운 이빨 투성이였다. 부모 관심의 결여가 그 아이에게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았다. 결국 그 아이는 성장하면서 어른들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똘똘 뭉쳐진 문제학생으로 비뚤어졌다. 성인이 된 지금도 그 사람은 사람에 대한 불신과 이유없는 미움의 화신이 돼 있었다.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으로 인해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메마른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 사람의 피드백 통의 모습은 어떨까. 아마도 밑이 없는 빈 통이 아닐까.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피드백을 받은 적이 없으니 아예 피드백 통 자체가 불필요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스스로도 주고 싶어도 피드백을 줄 수 없게 된 것은 아닐까.
어릴 적 시기를 지내고 나면 누구나 사회생활을 영위하며 살아가게 된다. 사회에 나와 만나는 대상들이 다름아닌 친구와 직장의 상사들, 동료들 부하직원들이다. 특히 직위와 나이에 의해 영향력을 받기 쉬운 상사들의 역할모델은 가정내에서의 부모와 유사하다. 즉 피드백 통에 구멍을 내기 쉬운 원인제공자들이란 뜻이다. 동료나 부하로부터 크게 상처받는 일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상사의 눈길 한번 헛기침 한번에도 가슴이 철렁거리는 연약한 직원들이 많다. 상사의 리더십 스타일에 따라서 사무실의 생산성이 오르락 내리락함은 당연지사인 셈이다.
말 안 듣는 부하직원에게 따뜻한 표현의 인사를 건네는 일은 쉽지 않다. 오히려 질책 한마디 내뱉기가 더 수월하다. 그러나 일전에 읽어 본 다른 책에서도 권하는 방법이지만, 세 번 참고 한 번 야단을 쳐 보라고 한다. 한 번의 잘못보다 세 번의 잘한 일을 떠올리며 칭찬을 먼저 하라고 권한다.
나 자신부터 부족한데 굳이 남보고 뭐라 할 게 있을까 싶지만, 긍정적 피드백은 상대방과 나 자신의 피드백 통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가득 채워야 또 남에게 긍정적 피드백을 자주 퍼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싶다.
누구나 자라오면서 생겨난 크고 작은 상처들--피드백 통의 크고 작은 구멍들--은 감추고 산다. 이미 생겨난 구멍들은 어쩔 수 없다고 하자. 그러나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좋은 의미의 긍정적 피드백으로 뚫린 구멍들을 메우면서 노력해 갈 수 있다. 대화의 갭--작은 구멍--을 메워가는 노력을 경주해 보자. 피드백은 대화의 시작이며 조직문화를 바꾸는 지름길이다.

by 토선생 | 2007/10/12 17:20 | 책을 읽고나서 | 트랙백 | 덧글(0)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산다는 것

“교회 나간다고 믿는 것 아냐 … 내 안의 악마 짓밟아야 믿는 것”

“예수의 부활이 뭔가. 몸이 다시 살아났다 해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그걸 따져보라.”

7일 오전 9시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의 신학대학원 지하 강당. 일요일 아침인데도 강당은 꽉 찼다. 어림잡아도 100명이 넘었다. 다들 김흥호(88·전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목사의 ‘일요 강연-신약성경’을 들으러 온 ‘목마른 사람들’이었다. ‘일요 강연’을 시작한 지는 40년이 넘었다. 올 하반기가 마지막 강연이라고 한다.

김 목사는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영성가이자, 신학자이자, 구도자다. 유(儒)·불(佛)·선(仙)에도 통달한 그를 일부에선 ‘기독교 도인’이라고도 부른다. 강당을 가득 채운 청중의 수준도 만만찮다. 셋 중 하나는 대학교수라고 한다.

“죽어서, 천국에 가서 편안하게 낮잠을 자겠다고 예수를 믿는 건가. 그건 아니다. 지금은 일을 많이 못하지만, ‘나’도 예수처럼 부활해서, 지금보다 높은 차원이 돼서, 더 많은 일을 해야겠다고 예수를 믿는 거다.” 그의 강연은 차분하고 힘이 넘쳤다. 또 ‘숨결’도 있었다. 그 ‘숨결’은 끊임없이 꿈틀댔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살아서 펄떡거렸다. 7일과 지난달 30일, 이틀에 걸쳐 강의가 끝난 그와 마주 앉았다. 아흔을 내다보는 나이, 청년 못지 않게 정정한 그에게 ‘인간’을 묻고, 또 ‘신’을 물었다.

-예수의 부활은 ‘몸의 부활’이 아니라고 했다.

“물론이다. 예수가 무덤에서 걸어나오든, 안 걸어나오든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게 미라가 다시 일어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럼 묻겠지.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어야 하나. 바로 ‘내 안’에 살아야 한다. 나는 오늘 강연을 하려고 평택에서 차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왔다. 그때 그리스도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거다. 내가 지금 말을 하고 있지 않나. 이 순간 그리스도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거다.”

-그럼,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나.

“내 안에 있다.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그걸 매순간 느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 아무리 믿지 않으려 해도, 안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살면 무엇이 달라지나.

“한없는 기쁨이 생긴다 이거지. 거짓말 안 하고, 정직하게 살고 싶어 진다 이거지. 조금이라도 여러분을 도와주고 싶어진다 이거지. 뭔지 모를 기운이 내 안에서 계속 뿜어져 나온다 이거지. 나는 그걸 ‘기쁨’이라고 부른다.”

-어릴 적 목사님은 병약했다고 들었다.


“나는 병이 참 많았다. 1년에 두 달은 아파서 학교에 못 갔다. 죽을 고비도 네 번이나 넘겼다. 그러다 35세 되던 해 3월17일 오전 9시5분에 ‘나’를 알게 됐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한 것도 ‘본래적인 자신’을 알라는 얘기다. 그때 내 삶이 바뀌었다. 35세 이전에는 ‘내 힘’으로 살았다. 그러나 35세 이후에는 ‘하나님의 힘’으로 산다. 그래서 행복하다. 지적인 면, 정적인 면, 행적인 면 모두 말이다.”

-‘나’를 안 그 순간은 어땠나.

“시간제단(時間際斷·시간의 끊어짐)이 일어난다. 35세 전에는 고민이 많았다. 나는 모태신앙이다. 그런데도 예수를 믿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무리 믿으려고 애를 써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당시 키에르 케고르, 하이데거 등 실존과 철학을 공부하면서도 생각은 끊어지지 않았다. 내일 죽는다고 해도 생각은 끊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35세 때 생각이 ‘딱!’ 끊어졌다. 그때 ‘실존’을 알게 됐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실존’이 이것이구나를 알게 됐다.”

-그 ‘실존’이란 무엇인가.

“진실된 존재다. 거짓 존재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게 ‘내 안에 사는 그리스도’다. 35세 전의 ‘나’는 거짓 존재였다.”

-하루 한 끼만 먹는다고 들었다. ‘1일1식(一日一食)’한 지는 얼마나 됐나.

“올해로 45년이 넘었다. 몸이 약해 사람들은 내게 서른 살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1일1식’한 뒤로 병이 없어졌다. 오히려 내 안에서 에너지가 샘솟는다.”
-‘1일1식’을 시작한 이유는.

“스승인 다석 유영모(1890~1981) 선생도 1일1식을 했다. ‘다석(多夕)’이란 호도 ‘夕(석)+夕(석)+夕(석)=多夕(다석)’해서 ‘하루 세 끼를 한 번(저녁)에 먹는다’는 의미로 지은 것이다. 유영모 선생은 ‘1일1식’하며 하루 10시간씩 강의했다. 그만큼 에너지가 나온다. 다석 선생은 인도의 간디가 ‘1일1식’했다는 얘길 듣고 “비결이구나”라며 시작했다. 석가도 ‘1일1식’을 했다고 한다. 나는 스승을 따라 ‘1일1식’을 시작했다.”

-목사님은 기독교인이다. 왜 유·불·선을 공부했나.

‘나’를 알기 위해서다. 과거 우리 역사에는 도교도 있고, 불교도 있고, 유교도 있었다. 그게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바로 조상의 삶이었다. 나도 모르는 나의 의식 속에는 유교도 있고, 불교도 있고, 도교도 있다. 그래서 ‘나’를 알기 위해서 공부했다.”

-철학과 과학, 예술과 종교도 얘기한다.

“철학을 모르면 ‘나’를 모르고, 과학을 모르면 ‘물질세계’를 모르고, 예술을 모르면 ‘아름다움’을 모르고, 종교를 모르면 ‘생명’을 모른다. 그러니 철학도, 과학도, 예술도, 종교도 알아야 한다. 65세 정도 되니까 할 일이 없다고 얘기한다면 그건 틀린 얘기다.”

-가장 뿌리 깊은 인간의 욕망은 뭔가.

“식욕과 성욕이다. 그런 욕망이 내 속에 있는 ‘악마’다. 성경에도 ‘악마는 늘 집에 있느니라’란 구절이 있다. 무슨 말인가. 집안 식구가 ‘악마’란 얘기다. 그럼 ‘악마’가 어디에 있겠는가. 바로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마음 속에 악마가 있으니, 집안에 있는 악마에도 걸리는 것이다. 내 안에 악마가 없다면, 집안의 악마에도 걸릴 일이 없게 된다.”
-그 악마를 어찌해야 하나.

“교회에 나간다고 그리스도를 믿는 게 아니다. 바로 내 안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러려면 내 안의 악마를 짓밟아버려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온다. 그래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게 된다. 예수가 누구인가. 자기 속의 악마를 이긴 자다. 그래야만 세상을 이긴 자가 된다.”

-성경에는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는 구절이 있다. ‘거함’의 의미는.

“예수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는 것이다. 그게 마음속에 거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어느 정도 되면 깨닫게 된다. ‘내가 예수님의 생각과 같이 생각해야 하는구나.’ 그러나 그게 내 힘으로 안됨을 알게 된다. 자력(自力)으로 안됨을 말이다.”

-그럼 어찌해야 하나.

‘내 힘으로 안 되는구나’를 절감해야 한다. 그리고 나를 놓아야 한다. 그 순간에 시간이 제단된다. 그렇게 시간이 끊어진다. 그리고 매순간 타력(他力)을 느끼며 살게 된다. 그게 ‘성령의 숨결’이다. 시간제단을 경험하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

-불교에선 ‘돈오돈수(頓悟頓修·깨치면 더이상 닦을 것이 없다)’와 ‘돈오점수(頓悟漸修·깨친 후에도 계속 닦아야 한다)’ 논쟁이 여전하다. 정말 다시는 돌아오지 않게 되나.

“물론이다. ‘돈수’니 ‘점수’니 하는 건 한가한 얘기다. 헤엄을 쳐서 태평양을 건너는 게 인간의 삶이다. 그게 자력이고, 그게 점수다. 그럼 ‘돈오’는 뭔가. 헤엄을 치다가 큼지막한 배를 타는 것이다. 배를 탄 세계는 어떤가. 한없이 평화롭고, 한없이 자유롭다. 반면 헤엄을 쳐서 태평양을 건널 때는 어떤가. 늘 공포와 불안, 절망 속에 잠겨 있다. 둘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 태평양을 건너다가 배를 탔는데 다시 헤엄을 치겠다며 내려가는 사람이 있겠는가. 만약 있다면 그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건 깨달음이 아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에 왜 간격이 존재하나.

“담벼락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나’ 사이의 담벼락을 깨야 한다. 그 담벼락이 뭔가. 바로 ‘죄’다. 탐욕과 식욕, 성욕 같은 욕망이 모두 담벼락이다. ‘하나님’과 ‘나’를 막고 있는 담벼락이다. 그걸 치워버려야 ‘하나님’과 ‘나’가 하나가 된다. 그게 바로 율곡(栗谷) 철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둘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둘이 되는 것이다.”

-‘나알알나(www.naalla.com)’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꾸렸다. ‘나알알나’는 무슨 뜻인가.

‘나를 알면 앓다 낫는다’는 의미다. ‘나’를 안다는 것, 그거이 철학이다. 앓다 나았다는 것, 그거이 도덕이다. 그래서 철학에서 도덕이 나온다. 그 철학과 도덕을 합치면 ‘종교’가 된다. 종교는 지행합일이 돼야 한다. 그래야만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를 가질 수 있다. 그래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게 된다.”





김흥호 목사는

1919년 황해도 서흥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기독교 목사였다. 평양고보를 나온 그는 일본으로 유학,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해방 후 귀국해 후학 양성을 위해 용강중학교를 설립해 교장을 역임했다.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도 활동했으며, 다석 유영모 선생 밑에서 6년간 사사했다. 47년에는 월남해 국학대학(이후 고려대와 통합됨)의 철학 교수를 지냈다. 그러다 35세 되던 54년에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했다. 이후 그의 삶이 크게 바뀌었다.

55년부터 84년까지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와 교목실장을 지냈다. 46세 때부터 이화여대 대학교회에서 유불선의 경전을 강연하는 ‘연경반 강의’를 시작했다. 86년에는 감리교 신학대학으로 옮겨 종교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그때가 67세였다. 96년에는 이화여대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by 토선생 | 2007/10/11 09:09 | Daily Jesu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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